데포소는 누구인가? 1

This entry is part 1 of 2 in the series 데포소는 누구인가?
#1 - 출생에서 두 아이의 애비가 되기 까지
BabyDeposo

1960년대 어느 한 해에 가까스로 출생.

소위 386 세대인데 머리 회전도 386 CPU 등급임.
[80년대 후반 경 컴퓨터계를 주름잡던 386 CPU의 속도가 33 MHz (메가 헤르쯔)라고 치면 현재 잘나가는 컴퓨터의 CPU, 인텔 i9급의 속도가 3 GHz (기가 헤르쯔) 정도 되고 이는 386 CPU 보다 151.5배 정도 빠름]

음악, 미술 그리고 문학을 좋아하지만 뭐든 재미있다고 착각한 상태에서 가리지 않고 가까스로라도 해보려고 발버둥침.

고교 시절엔 멋진 그룹 사운드에서 멋진 퍼스트 기타에 멋진 리드 보컬로 멋지게 이름을 날리고 싶었으나 가까스로 비슷하게 흉내만 내려다가 접음. 그래도 키보드, 베이스 기타 등을 만질줄은 앎.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하고 남들하는 건 다 해보기 위해 재수 1년을 거쳐 가까스로 대학에 진학. 나중에 알아보니 꼴찌에서 2번째였음.

대학 1학년때는 왜 태어났고 뭐하고 살아야하는지 궁금해서 무작정 헤매고 다님. 대학 2학년 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돌팔매질, 불놀이질, 구호질 하다가 급기야 학사경고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음.
3학년 1학기를 말도 안되는 성적으로 가까스로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군에 소집됨.

훈련소에 있는데 사령부라는 왠지 멋지게 느껴지는데서 온 뺀질기가 줄줄 흐르는 한 중사가 찾아와 타자 칠줄 아는 놈 손들라고 했음. 동생 타자기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까지만 약 백번은 쳐본 경험이 있는 나는 단지 손을 들었을뿐이었음.

그로인해 행정병으로 “사령부”에 자대배치 받았는데 타자를 “잘” 칠줄 모른다고 매일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1주일만에 타자를 마스터함. 그 후 “뺀질이”라는 별명을 훈장처럼 달고서 고참들의 갖은 천대와 멸시와 핍박을 당함.

가까스로 소집 면제 당한 후 “공부란걸 해보자 이제는 쫌” 이라는 각오로 가까스로 전공책을 다 외움. 그 무식함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3.48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학점으로 막판 역전 분위기의 아우라 속에 가까스로 졸업함. 친구들이 “과외를 받았음이 틀림없는 비열한 X”이라고 비난하기도 함.

졸업 후 남들은 철썩철썩 합격해서 다 들어가는 이 회사 저 기관 다 낙방하다가 가까스로 한 회사에 취직하면서 내 인생의 키워드는 “가까스로 XX하다”가 아닐까 염려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사회 생활 시작, 끈적한 월급쟁이의 인생이 시작됨.

그 시작된 첫 해의 여름 어느 날에 아버지 돌아가심. 당신의 무거운 어깨, 눈꼽만큼이나마 가볍게 해드리기도 전에 차가운 소주 한 잔 함께 나눌 시간 없이 매정하게 훌쩍 떠나버리심.

“뭐가 그리 급하셨나요…………………………………………………..?”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른채 가까스로 보내드림. 졸지에 총각 가장이 되면서 시작된 내 인생의 시련기를 가까스로 거쳐냄.

그렇게 시련을 통해서 보다 성숙하고 신중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해피엔딩 분위기의 드라마나 영화 처럼 될법도 한데, 그 이후로도 철딱서니 없는 삶을 끈질기게 이어나감. 여행 좋아한답시고 한 겨울에 밤 산행을 수시로 시도 하다가 길을 잃고 얼어 죽을뻔한 적도 있음. 말도 못하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님. 대략 10개국 정도를 싸돌아다니며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임 (?)

……….중략………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여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체질.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설치고 다니고 흥청망청, 어영부영, 설렁설렁, 살던 30을 훌쩍 넘긴 어느 즈음, 장가 안가면 “너죽고 나죽자 시방 (여기서 “시방”은 우리가 흔히 화가나서 욕을 하고 싶지만 그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씨방”이라고 유화 내지는 위장한 그 “씨방”이 아니라 “이제”, “지금”이라는 의미의 사투리임)”이라는 어머니와 수 없이 많은 친척들의 협박 속에 하루 하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까스로 살게됨.

주위에 있는 사람의 형상을 한 모든 존재들이 최소 한 번씩은 소개팅 또는 선을 주선해 주는 희망과 절망이 수시로 교차하는 바쁘고도 혼란스러운 세월을 겨우겨우 (가까스로 대타로 기용해봄) 보내게됨. 그 소개팅이나 선이라는게 주선 들어올때마다 혹시나요, 약속 잡을때마다 오묘한 기대요, 허나 할때마다 실망이요 돌아설때마다 본전 생각인것을.

35명 째의 만남을 치루고 난 어느 날, 겨우겨우 (왠지 안어울리지만 그냥 씀) 굳게 결심함. “내 다쒸는 선이고 소괘튕이고 쥐랄이고 안본닷”

그렇게 직장 후배들이 “데결추위 (데포소 결혼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위원회 활성화 명목으로 수 십 차례에 걸쳐 회식을 제공받았고 그 결과 데포소의 통장 잔액이 바닥을 강타하는 “무쩐지경”에 이를 즈음이었음.

계열사 직원들과의 연석 점심 회식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발견하게 됨.
뛰용~ 뛰용~ 속절없이 튀어나온 나의 두 눈을 겨우겨우 (가까스로 보다는 좀 나은거 같음) 애써 진정시키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심함.

“너는 내꼬야!!!”

그 날 이후 5개월 동안 모니터링 작업에 들어감.
내꺼라고 찜한지 6개월이 되려는 시점에 심금을 울리는 이메일을 지금의 아내에게 가까스로 날림.

“꼬옥……제게 기회를 한 번만 주세요”라고.

첫 만남 이후 결혼까지 단 하루도 안빠지고 가까….. (안쓰는게 문맥에 맞을거 같아서 안씀) 만남. 허구허날 만나던 친구들 그리고 데결추위 위원들도 다 헌 빤스 처럼 내던져버리고 담배도 가까스로 끊고……
사람이 너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협박하고 그랬음.

첫 만남 이후 3개월도 안되서 양가부모 상견례 마침.
첫 만남 이후 5개월도 안되서 결혼식 올림.

첫 날 밤 이후 11개월도 안되서 첫 아이를 낳음. (정상임)
첫 아이를 낳고 아내의 몸이 회복 됐을까 말까 하는 시점에 참다 못해 일을 저지름. 첫 아이를 낳고 11개월도 안되서 둘째 아이를 낳음.

…….중략…….

늘 시간과 돈 그리고 인간애를 갈구며 아니 갈구하며, 작은 것에 행복해 하고 큰 것에 놀라워 하며 사람과 세상을 가까스로 사랑하며, 정의는 반드시 구현될것이라고, 나 말고 누군가가 구현할거라고 입만 나불거리며, 행동은 이기적으로 살고 있었음.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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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Anonymous says:

    재밌는 자기소개네요 입사시험때 이런 자기소개 있다면 당장 합격?!!! 기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Deposo says: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덧붙여지는 이야기들이 등장할테니 또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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